이모를 대하는 남친과 결혼이 망설여져요.
안녕하세요. 올해 29살이 된 여자입니다. 제 개인적인 문제로 마음이 너무 복잡하여 조언글 남겨요.
저는 이모밑에서 자랐습니다. 엄마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하셨는데 회사에서 만난 나이차이 많이 나는 남자와 결혼을 하셨다가 저를 낳고 이혼하셨어요. 엄마는 이혼을 하신 뒤 외할머니댁에 들어와서 사셨는데, 할머니께서 엄마에게 애를 봐줄테니 일을 하라고 하셨대요.. 그래서 엄마는 저를 맡기고 일을 시작했는데 몇달 못하고 그만두고, 한 직장에 오래있지 못하고 계속 옮겨다니다가 외삼촌이 사업하시는 곳에 자리를 하나 내주셔서 삼촌이 계신 지방으로 내려가셨어요.
그래서 할머니와 이모(엄마동생)이 저를 키워주셨는데요, 할머니께서 가게를 하고계셔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모가 저를 많이 봐주셨어요. 강의 끝나면 무조건 집에와서 저를 봐주고, 공강인날에는 놀러를 가기도 했어요. 이모는 단순히 놀아준다는 개념보다는 할머니가 저를 케어하기 힘드시니 시간을 같이보내주고 케어해준다는 개념이었던것 같아요.
이후에 제가 어린이집, 유치원에 들어가고 나서는 각종 행사에 이모가 다 챙겨서 보내주셨고, 준비물이나 생일잔치 등 어느 것 하나 빠뜨리지 않고 잘 챙겨주셨어요. 부모상담때도 이모가 가구요. 저한테는 이모가 엄마였죠.
그러는 동안 엄마는 거기서 새아빠를 만나 재혼을 하셔서 저랑은 거의 못보다시피 했어요. 이모가 직장생활을 시작하자 저를 볼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유치원 하원 후에는 베이비시터를 고용해 제가 혼자있지않게 해주었어요.
제가 중3때 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이후에는 이모랑 둘이서만 살았네요. 이모는 50이 다되어가는 지금도 결혼하지않으셨어요. 저때문에요. 이모가 저 때문이라고 이야기한적은 없는데, 저 때문인것 같아요. 예전에 이모가 오래만나던 삼촌이 있었는데 저랑 놀러도가고 친하게 지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부터 할머니가 '할머니랑 둘이 살자'라는 말을 자주 하셨는데, 아마 그때 이모가 그 분이랑 결혼이야기까지 나왔던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눈치없이(그땐 할머니가 왜그런지 몰랐어요) 싫다고 이모없으면 안된다 했고, 이모에게도 할머니가 그런말을 한다고 이르기도 했죠. 그 이후에 이모는 그 삼촌이랑 헤어졌는데 내가 왜 헤어졌냐 물어도 말을 안해요. 아마 제가 마음에 걸려서 그런거겠죠...?
제가 대학생이 되니 MT에, 동아리에 노느라 정신없는데 이모가 대학생때 이런것들 다 누리지못하고 저를 보느라 일찍 들어왔던게 너무 미안했어요.. 이모도 많이 놀고싶었을텐데 조카 돌보느라 자기 인생 누리지못했구나 싶었구요. 동시에 엄마가 많이 밉기도 했어요. 나는 엄마 딸인데 엄마는 나몰라라 하고 이모가 희생하니까요. 아직도 혼자인 이모를 보면 너무 미안해요. 그런 제가 다 커서 결혼할 나이가 되었어요.
제게는 6년을 만난 남자친구가 있는데, 남자친구도 저희 이모를 많이 좋아합니다. 이모도 많이 예뻐해주시구요. 그런데 상견례 이야기가 나오고 결혼이야기가 구체화 되면서 트러블이 생겨요....
이모를 모시고 살진 못하더라도 생활비 정도는 드리고 싶거든요. 물론 결혼 후에도 맞벌이로 계속 일할거구요... 그리고 명절에는 이모네 집(지금 이모랑 내가 살고있는 집)에 가고싶은데 남자친구가 그걸 이해를 못해줘요. 자기네 부모님들은 노후대비가 다 되셔서 따로 생활비가 필요없으신데 왜 너만 드리냐, 그리고 이모는 친정부모가 아닌데 명절때 왜 이모한테 가냐.... 이모는 엄마가 아닌데 왜 이모생일마다 나까지 가서 사위노릇 해야하냐... 이모가 저에게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 그렇게 말하는게 너무 서운해요. 이모가 일하신 것도 제 결혼자금 모아주시느라 그랬던건데....
저는 이모가 힘든 일하지 않고 (영업직인데 인센티브 제라 무리를 많이 하셔서 몇번 쓰러지셨어요) 조금 덜 힘든 일 하셨으면 좋겠고, 저를 위해 사신 인생을 보상해드리고싶거든요... 그런데 이게 제 욕심일까요? 제가 이모한테 생활비 드리는것, 엄마처럼 챙겨드리는게 오지랖인걸까요? 이모에게 이유를 말하지않고 결혼 엎고싶다 했더니 돈때문에 그러냐며, 이모가 어떻게든 마련해준다고 결혼진행하라고 하는데 너무 눈물이 납니다... 더 진행되기전에 엎는게 맞겠죠?
(+추가)
제가 그런 남친을 두고 고민했던 이유는 오래만났기때문이 아니라, 만나는 동안은 매년 이모 생신때 같이 선물하고 저녁식사하고 이모를 잘 챙기는 모습을 보였기때문이었어요. 이모 생신때는 제가 저녁 차리는동안 남자친구가 이모 회사로가서 이모 모시고 오기도 했구요. 이모도 아들처럼 예뻐하셨고, 남자친구도 생일카드에 저 키워주셔서 감사하다고 쓰는 등 나에게도 잘했지만, 결혼후에도 이모에게 잘 하겠다 싶었기때문에 계속 만났네요.
그런데 결혼 얘기가 나오니 돌변해 적잖이 당황했네요.. 저도 이번에 좀 실망을 많이했는데 이모가 남자친구를 너무 예뻐하시고, 빨리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모습 보는게 소원이라하셔서 이모한테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 결혼 진행할까하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기도했어요.. 남자친구랑 헤어졌다하면 이모가 서운해하실거같지만 이모가 바라시는건 제가 행복한것이니 궁극적으로는 남자친구랑 헤어지고 나를 사랑해주고 이모를 존경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게 나도, 이모도 행복하게되는 방법같네요. 이따가 남자친구 만나기로 했는데 잘 이야기하고 상견례는 없던 일로 하고오겠습니다.
(+후기)
그날저녁에 남자친구 만나서 이야기 잘 했어요.
남자친구에게 이모에 대해 그런식으로 이야기 한건 마음상했다고 이야기했고, 6년동안 이모에게 잘해오다가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뭔지도 물어봤어요. 오빠는 그동안은 여자친구의 이모님이었다가 결혼 후에는 아내의 친엄마같은 이모인데 장모님처럼 모시기에는 친모가 아니라서 장모님처럼 대해드리기도 뭐하고, 키워주신 분이니 그렇게 안하기도 부담스러워졌다고 하네요.
오빠네 부모님은 일하시는 업계에서 알아주시는 유명인사인데 나이가 찬 외아들이 있으니 여기저기서 선 자리도 많이 들어오고, 부모님도 저랑 헤어지고 선을 보라고 계속 압박을 하셨나봐요.
그동안은 오빠가 여자친구 있는거 알면서 왜그러냐며 화내고 다 거절했는데 30대 중반이 되니 자신도 결혼에 대한 생각이 생기고 고민을 하게되면서 저랑은 집안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속앓이를 했대요. 오빠가 대놓기 이야기한건 아니지만, 부모님께서 이모를 안좋게 이야기하신것 같다는걸 느꼈어요. 상견례하자는것도 결혼을 위한 상견례라기보단 '그 이모 어떤 사람인지 한번 보기나 하자'하는 식이었던것 같아요.
오빠네 부모님께서는 저를 예뻐해주시긴 했는데 늘 좋은'친구'로 선을 그으셨어요. 오빠도 그게 늘 속상했었는데 부모님이 이모만 아니면 참 괜찮은 아이라고 이야기를 하셨대요.
부모님이야 이모를 못보셨으니 그럴수 있겠지만, 이모가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알면서 그렇게 말한 오빠에 대해 많이 서운했고, 이모에게 한 발언에 대해서는 사과받고싶다고 이야기해 오빠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습니다. 저도 오빠가 혼자 속앓이하는데 몰라줘서 미안하다고 사과한 뒤, 결혼까지 하기에는 서로가 너무 힘드니 정리하자고 이이기했습니다.
사실 오빠가 저를 보호해주고 부모님을 잘 설득한다면 힘든 여정을 같이 극복할 자신이 있었지만, 이모를 대하는 태도와 부모님께 휘둘리는 오빠 모습을 보니 그 힘든 과정을 이겨낼 자신도, 그럴 마음도 없어졌어요. 오빠도 잠깐 말이 없더니 그러자고 하더라구요. 서로 그동안 고마웠다 말하고 잘 헤어졌어요. 헤어지면 많이 힘들줄 알았는데 오랫동안 미뤄놓은 숙제를 끝낸것처럼 후련하기도 했습니다. 처음만났던 20대 초반때와는 달리 변해가는 서로의 모습에 알게모르게 결혼까지는 힘들다고생각하고 있었나봐요^^
여튼 그렇게 헤어지고, 명절연휴에 이모와 저는 통영으로 여행을 다녀왔어요. 바람도 쐬고 맛있는것도 먹으며 좋은시간을 보냈습니다. 마지막날에는 속마음도 이야기하구요. 오빠랑 헤어진 이야기는 나중에 하려고 했었는데, 마지막날 밤에 얼굴에 팩을 붙히고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이모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어요. 그때의 상황이 아직 생생해 대화체로 쓸게요.
이모: 근데 너 00이랑 헤어졌어?
나: 응? 왜?
이모: 맨날 영상통화하고 카톡하기 바쁘던 애가 2박3일동안 전화한통, 카톡한번 안하면 빤하지.
나: 응 그렇게 됐어
이모: 왜?
나: 서로 안맞는 부분이 있더라고.
이모: 너네가 하루이틀 만난 사이도 아니고 하루아침에 갑자기 안맞는게 말이 돼?
나: 하루아침에 안맞기도 하더라고 ㅋㅋ 팩하고 말하면 얼굴 땡기니까 나중에 얘기해
이야기가 무겁게 흘러갈까봐 팩 핑계대고 대화를 끊으려했는데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이모가
이모: 나때문이야?
나: 뭐가 이모때문이야.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
이모: 그거 아님 결혼하고싶다고 난리치던애가 왜 갑자기 헤어지쟤
나: 나때문이야 나. 내가 싫어서 헤어지자고했어
이모: 내가 00이 부모님 한번 만나볼까? 걔네 부모님도 너 예뻐하신다며
나: 아 예뻐하시는줄 알았는데 착각이었어 나 원래 공주병있잖아 ㅋㅋㅋㅋ
이모: 니가 이런 대우받을 애가 아닌데 미안하다..
이모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제가 눈물이 터져서 소리내서 막 울어버렸어요. 이모랑 저랑 둘이 부둥켜 안고 한참 울다가 제가 이모한테 그랬습니다.
나: 이모는 나때문에 그때 **이 삼촌(이모 만나던 분)하고 헤어졌잖아.
이모: 야! 그거는 내가 더 좋은남자 만날 수 있어서 헤어지자고 한거야
나: 나도 더 좋은 남자 만날 수 있어서 헤어지자고 한거거든?
이모: 너 그러다가 내 꼴난다!!! 나도 그때는 내가 예쁜 줄 알았어
나: 뭐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둘이 한참 웃음)
이모: 이제 우리 @@이(저)도 시집갈만큼 다 컸으니 나도 맘 좋은 아저씨 찾아 시집가야겠네
나: 이모~ 이모좋다는 아저씨 중에 좋은 사람 있으면 얼른 가
이모: 너네회사에 맘 좋은 아저씨 있으면 소개해줘 이모도 이제 싱글라이프 좀 청산하자
나: 그래 이모. 이모도 나도 좋은사람 만날 수 있을거야. 다들 행복하게 살자
이모: 근데 니 꼬라지를 보니 너보단 내가 더 먼저 갈거같다. 분발해라
나: 어 제발 먼저 가 ㅋㅋㅋㅋㅋ 나도 분발할게
이런식으로 농담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어요.
이모는 제가 이모에게 너무 미안해할까봐 일부러 유쾌하게 받아쳐준것같아 너무 고맙고 미안해요. 언제나 나에게 헌신한 이모에게 평생 잘하고 은혜갚으며 살거에요^^
참! 그리고 이모는 2월 둘째주까지만 일하고 잠시 일을 쉬기로 했어요. 이후에는 조금 덜 힘든 일로 구하신다고하구요. 너무 잘되었죠... 집에서 쉬는 동안 이모와 시간 더 많이 보낼게요.
저와 우리 이모를 모르시는 분들이지만, 앞으로 이모에게 꽃길만 열리게 응원해주세요.조언해주시고 격려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