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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정신병을 숨기고 결혼했네요.

category 카테고리 없음 2016. 12. 31. 17:38

연애 8년하다 올해 결혼 한 새댁입니다. 

남편이 심한 강박증이네요..사실 이런 얘기를 누구에게 하겠어요. 속으로 끙끙 앓다가 익명의 힘을 빌려 써 봅니다. 

연애 때, 남편은 보통 남자들과 많이 달랐고, 무뚝뚝하지만 자상한 모습에 끌려 결혼을 결심하고 8년 동안 남편만 바라보다 결혼했네요.


얘기가 길어질 거 같은데..

연애 때와 결혼 후로 나눠서 말할게요.


연애 할 땐, 저희가 장거리 연애를 해서 여느 커플처럼 자주 만나지 못 했어요.특이점이 있다면, 그 때 남편은 매우 청결했다는 거예요. 

깨끗하다 못 해 결벽증이 있는 것도 같았고요.예를 들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손잡이를 잡거나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갈 때 등 손잡이를 옷으로 잡거나 어깨로 밀어요. 그래서 제가 물었더니..

어떤 사람이 어떤 더러운 짓을 하고 (코를 파거나 화장실에서 손을 씻지 않거나 등등) 손잡이를 잡을 수 있으니까 그런거다라고 하더라고요.생각해보니 맞는 말 같아서 그 때 부터 지금까지 저도 항상 손잡이를 안 잡거나 부득이할경우 옷을 이용해 손잡이를 잡습니다.


남편 집에 놀러갔었는데, 모델 하우스인줄 알았어요. 책상에 자질구레한 것들이 하나도 없고 엄청 깔끔해서요. 모든게 열맞춰 가지런히 있더라고요.저도 나름 깔끔하다고 생각했는데.... 저랑은 차원이 다른 남편을 더욱더 존경하게 됐네요..ㅋ


평소에 남편이 손을 많이 씻어 겨울에는 항상 제가 핸드크림을 사줘요. 겨울에 보습을 안 해 주는데 하도 손을 씻어대서 피가 나고 거칠어지더라고요..


같이 쇼핑을 갔었는데.. 세일을 한 가격이라 그리 부담스럽지도 않는데.. (남편은 회사원이어서 돈 잘 벌고 있었어요) 3-4만원이었나? 암튼 뭘 하나를 살 때도 5시간 이상 고민하고요. 제가 제 돈으로 운동화를 사준다고 해도 그건 너희 부모님 돈이니 싫다 나중에 너가 돈 벌고 여유있을 때 선물해줘라라고 해서..어? 뭐지? 진짜 특이한데 멋있다 했었네요.


근데 8년 동안 사귀면서 정말 좀 서운한 점이 많을 정도로 구두쇠 면모를 보이더라고요.

진짜 치사하게 돈 갖고 뭐라 안하고 항상 더치 아니면 그 찰나의 정적이 싫어 제가 먼저 내는 편인데요. 제가 사겠다고 치킨 먹으러 가자고 해도 돈 아깝다 하고 안 가고 해서 속상해서 많이 싸웠는데.. 프로포즈 받고 결혼 하려고 서로 모은 돈을 공개하니 혼자 1억을 모았더라고요. 

여기서 요점을 흐려서 죄송한데 금전 관계가 아닌 강박증에 대해서 쓰는 겁니다.(저는 어렸을 때 부터 주식 투자, 경매물에 관심이 많아 어린 나이지만 남편보다 두 배 정도 벌었네요. )그래서 좀 구두쇠이긴 하지만 금전관계 확실하고 신용 좋고 허세 없고, 쓸데 없는 소비 안 하고 저축 잘 하는 모습에 확신이 들어 결혼하게 됐네요.



결혼 후..

서로가 깨끗한 편이라 (남편이 엄청 깔끔하긴 하지만) 결혼 생활에서도 문제가 없었어요. 제가 요리를 좋아해서 밥을 하고 남편이 뒷정리를 하고..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너는 건 같이 널고 청소도 내가 청소기 돌리면 남편이 물__질 하고 뭐 이런식으로 잘 삽니다.

근데 딱 한 곳! 남편 서재는 남편이 청소를 합니다. 원래 남의 물건을 터치하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지라 저도 이해하고 (청소 안하면 편하니까) 넘어갔네요.


아! 남편의 많은 습관 중 하나는 아무리 작은 소비를 해도 꼭! 영수증을 받는 겁니다.천원 짜리를 사도요.남편 서재에 가보면 오늘 아니면 일주일동안 썼던 영수증들이 진짜 줄 맞쳐 가지런히 있고요.옷도 몇 번 안 입고 동생을 주거나 기부를 해서 옷 장에 옷이 별로 없는데.. 진짜 옷가게도 이렇진 않을거예요. 정말 가지런히 옷걸이 간격까지 딱 맞춰 있어요. 나중에 인증샷 찍어서 올릴게요.


그리고 관계 갖는 일에서도.. 꼭 둘 다 샤워를 하고 해야합니다. 신혼은 갑자기 밥 먹다가도 상 엎고 한다던데.. 그렇게 눈 맞으면 샤워를 하자고 하네요...내가 더럽나? 냄새나나? 좀 그렇더라고요..또 관계가 끝나면 난 꼭 안고 있고 싶은데 바로 씻으러 또 샤워하러 가고요..이건 뭐 연애 했을 때 부터 그랬으니까.. 그러려니 하는데...


그러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 했네요..처음엔 문을 잠그고 외출할 땐데.. 문을 잠궜음에도 불구하고... 문고리를 잡고 아주 힘쎄게 딱 세번 억지로 열려고 문고리를 돌리면서 밀고 당기는 과정을 진짜... 매번 외출 할 때마다 하네요.그래서 제가 그러지 말라고 잠근거 아는데 문 망가지게 왜 그러냐고 핀잔을 주면 그래야 맘이 편하다고 해서 아.. 강박증이 있구나.. 하고 알았는데...혼자 외출할 땐 모르겠는데 저랑 같이 있을 땐 안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고친 줄 알았는데..


요 근래에 계속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서 서재에서 옷을 갈아입고 뭐 하고 할 때 (저는 거실에 있어요) 갑자기 딱! 딱! 그 엄지와 검지로 부딪혀서 소리내는 소리 있자나요. (핑거스냅이라고..) 그 소리가 나고 휘파람 소리도 나고 혀로 입 천장을 치면서 딱! 하는 소리도 나는 거예요.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근데 그게 남편이 퇴근하고 서재에만 들어가면 20분 동안 안나오면서 계속 그런 소리가 반복 되길래.. 얼마전에 물어봤는데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오늘.... 휴대폰으로 재밌는 게 있어 보여주려고 서재 쪽으로 가고 있는데.. 그 곡성에서 황정민이 냈던 휘파람 소리 아시나요? 소름 돋게 계속 휘파람 소리가 나서 문을 열어봤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남편은 그냥 서 있었고요) 

여기서 부턴 대화체로 쓸게요.


나: 뭐야? 지금 무슨 소리야? 왜 핑거스냅이랑 휘파람이랑 이상한 딱소리 자꾸 나는데?? 뭐했어?

남편: 아무것도 아니야

나: 그때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해서 넘어갔는데.. 자기가 나한테 뭔가 숨기는 거 같아서 무섭고 자꾸 의심들어서 그러니까 말해줘.

남편: 진짜 아니야 그냥 바보 같은 거야

나: 그니까 그게 뭐냐고.. 뭐 귀신 불러? 밤에 왜 휘파람을 불고 그래 무섭게?

남편: ......

나: 빨리 말해줘 나 자기랑 8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는데, 이렇게 자기에 대해 모르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무섭자나

남편: 그냥..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나: 우린 이제 가족이자나 다 이해할게 말해줘

남편: 단순한 강박증이야. 핸드폰을 책상에 놓을 때 똑바로 한 번에 놓여지면 핑거스냅을 치고 아니면 계속 맞을 때까지 그 과정을 반복하고 휘파람은 이것도 진짜 바보같은 건데핸드폰이 바르게 놓여지면 핸드폰 위 허공에다 동그라미를 그리면서 휘파람을 동시에 불고, 그게 끝나면 끝났다고 손가락으로 핸드폰을 가르키며 입으로 딱 소리를 내는거야.

나: 그게 핸드폰만 그러는거야?

남편: 아니 지갑, 영수증, 시계, 열쇠 등 모든 물건을 책상에 놓을 때마다 하는거야

나: 왜 그러는 건데?

남편: 나도 몰라 그걸 안하면 불안하고 계속 생각나고 그래서 맘이 편해지게 하는거야. 나 이상하지? 

나: 언제부터 시작된거야?

남편: 14살?

나: 그럼 우리 연애 했을 때도 그런거네? 

남편: 응.. 근데 그땐 휘파람 불고 스냅소리 내고 이런건 없었어

나: 왜 나있을 땐 안 하고 혼자 숨겼어?

남편: 창피하고 이상하니까..

나: 우리 정신과 상담 받아보자. 자기가 이렇게 하는게 이상하다고 느끼는게 아니야. 나도 어렸을 땐 횡단보도의 흰색 줄만 밟으려고 했었고 줄넘기도 백번 정해놓고 하다가 틀리면 다시 처음부터 했었어. 그래서 강박증이 뭔지 나도 잘 알아 근데 걱정되는건 그런 의식을 안 하거나 틀리면 마음이 불안하다는게 걱정되는거야. 그러다 더욱 심해져서 일상 생활에 지장을 주면 어떡해..

남편: 정신과? 나 안 미쳤어! 나 극복할 수 있고 약 같은거 절대 안 먹을거고 상담도 안 받을거야날 이상하게 생각하는게 맞네.. 이해 못해주네..

나: 아니 자기야 정신과 간다고 해서 미친거 아니자나. 우리 안 좋은 습관은 병원가서 고칠 수 있게 상담 받아 보자는 거자나..우리 애기 생기면 나중에 애가 자기 물건 만지고 할 텐데 그러면?

남편: 난 우리 애기 절대 안 때려

나: 그래도 전문가에게 상담 한 번 받아보자..응? 

남편: 너 절대 어디가서 이런 얘기 하지마라... 행여 친구들한테도 "너한테만 말하는건데" 하면서 내 얘기 하지마!

나: 안 해.. 


했는데... 정말 완강하네요. 여기서 제가 한 걸음 물러나서 지켜보는게 맞는건지... 가정을 위협하는거니까 전문가와 상담 받자고 하는게 맞는건지.. 저 조차도 전문가가 아니라 뭐라 말을 할지 모르겠어요. 저 어떡하죠?


오늘 아침에도 출근 전 한시간 동안 방에 틀어박혀서 핑거스냅 하고 있더라고요.. 휴...




추가)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댓글 하나하나 읽으면서 많은 생각과 힘을 얻네요. 

제가 이 글을 몇 번이고 다시 올린 이유는... 정신과 상담을 당장 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요 (남편이 반대함) 그리고 또 이런 얘기를 지인들한테 터놓고 조언을 얻을 수도 없고요.. 근데 글을 올릴때마다 묻혀서 제목을 좀더 자극적으로 변경하여 올렸습니다. 거슬렸다면 죄송하고요... 


네.. 남편은 OCD (강박장애) 입니다. 이 진단을 연애 할 때 남편이 자신과 똑같은 증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렸다고 하네요. 자세히 생각해보니 저에게도 그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했났고요. 근데 제가 사람은 누구나 사소한 강박증이 있다라고 얘기하고 심각성을 인지 못하고 넘겼었네요. 


어렸을 때 트라우마가 있나해서 물어봤지만 특별한건 없다고 하네요. 제가 보기에도 제 시부모님께서 평소 깔끔하시긴 해도 별 다른 이상한 건 느끼지 못 했어요. 그리고 남편은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어요. 


왜 결혼 전에 이런 얘기를 안 했나 하니까 제가 떠날까봐 두려워서 못 했답니다... 그리고 이 강박증 특히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들은 자기만의 깊고 깊은 어두운 비밀이라고 하네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어요. 


아기를 낳으면 서재 문은 잠궈둔다고 하네요. 사실 많은 분들이 우려 했듯이 저도 겁이 많이 나는데요... 아직 아이 계획은 없으니 그 전에 빨리 치료하는 쪽으로 해봐야겠네요. 


오랜 연애하면서 이 남자를 잘 안다고 자부했었는데.... 참... 제가 많이 부족했네요. 힘들겠지만 이혼할 단계는 아니라고 봐요. 댓글에 쓰인 조언대로 억지로가 아닌 잘 설득시켜서 상담을 받거나 그 전에 먼저 자기 의지로 고칠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갰어요. 남편이 아프다고 이혼하는건 아닌거같아서요. (제목을 자극적으로 써서 죄송합니다) 


댓글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렇게 많은 분들이 강박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놀랐고 제 모자란 글에 직접 자신의 경험담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힘이 됐어요. 


최대한 스트레스 주지 않는 쪽으로 남편을 잘 구슬러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참! 이 글을 지인들이나 시댁에서 보면 어떡하냐고 쓰셨던 분들. 걱정하지마세요. 남편 강박증인거 저 이외엔 아무도 모른대요. 심지어 시부모님들께서도 모르신대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사진은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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